두 개의 얼굴
시장 골목을 지나다 보면 가끔 이런 사람을 만납니다. 남의 물건을 슬쩍 밀치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사람, 줄을 새치기하고도 오히려 큰소리를 내는 사람. 그 얼굴에는 부끄러움의 그림자조차 없습니다.
잠언 기자는 이런 모습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악인은 그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자기의 행위를 삼가느니라" (잠언 21:29)
같은 하루를 살아도, 저녁에 자기 얼굴을 마주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한 사람은 낮의 잘못을 덮고 굳은 얼굴로 다음 날을 맞습니다. 다른 사람은 낮의 걸음을 되짚으며 조용히 자신을 살핍니다.
굳어진 얼굴, 그 이면의 두려움
'얼굴을 굳게 한다'는 표현은 단순한 뻔뻔함이 아닙니다. 원어의 뉘앙스는 오히려 '방어벽을 친다'에 가깝습니다. 자기 행동을 돌아보는 순간 무너질까 봐, 미리 얼굴에 철갑을 두르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얼굴이 있습니다. 자녀에게 모진 말을 하고도 사과 없이 넘어가는 부모, 동료의 공을 가로채고도 태연한 얼굴로 회식 자리에 앉는 사람. 그들의 뻔뻔함은 사실 강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주할 용기가 없다는 증거일 때가 많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 얼굴을 굳히는 유혹은 더 커집니다. "이 나이에 뭘 새삼스럽게" 하는 마음이, 성찰의 문을 닫아버리는 핑계가 되기 쉽습니다.
자기 행실을 살피는 사람의 자유
반대편에 선 정직한 사람은 자기 행실을 '삼갑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길을 헤아리고 조심스레 걷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매일 자신의 걸음을 다시 들여다볼 용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삶의 태도는 젊을 때보다 인생의 후반부에 더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자녀를 다 키우고, 은퇴를 앞두거나 지나온 지금, 우리에게는 그동안의 걸음을 돌아볼 시간과 지혜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 자기 행실을 살피는 습관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성숙의 표시입니다.
역설적으로, 자기를 살피는 사람의 얼굴이야말로 가장 편안합니다. 감출 것이 없기에, 굳이 방어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거울 앞에서
잠언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오늘 하루, 나는 어떤 얼굴로 저녁을 맞이하고 있는가.
완벽한 사람이 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다만 잘못을 마주할 용기,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살필 겸손을 가지라는 초대입니다. 그 겸손이야말로 우리를 진짜 자유롭게 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최근에 나는 어떤 순간에 얼굴을 '굳게' 하려 했나요? 그 뒤에 숨은 마음은 무엇이었나요?
- 하루를 마치며 자기 행실을 조용히 돌아보는 나만의 시간이 있나요?
- 부끄러움 없이 지나온 걸음과, 다시 돌아보고 싶은 걸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굳은 얼굴은 오늘 하루를 편하게 하지만, 살핀 마음은 인생 전체를 편안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