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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에서 줍는 이삭-(룻과 나오미 이야기)

터키옥13 2026. 7. 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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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 들판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은 멀고 황량했습니다. 나오미는 남편을 잃고, 두 아들마저 차례로 땅에 묻은 뒤였습니다. 함께 걷던 두 며느리에게 그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각자 친정으로 돌아가라." 오르바는 눈물로 입을 맞추고 돌아섰지만, 룻은 시어머니의 옷자락을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룻기 1:16). 그 말은 다짐이라기보다 텅 빈 자리에서 나온 결단이었습니다.

 

남은 자의 자리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돌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룻기 1:20). 이름의 뜻이 '기쁨'에서 '쓰라림'으로 바뀌던 순간입니다.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자리에서 돌아보면, 우리도 한때 그런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였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무언가를 잃고 난 뒤, 남은 것이라곤 빈 손과 낯익은 옛집뿐이었던 시절 말입니다.

 

이삭을 줍는 손

룻은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아스의 밭으로 나가 이삭을 줍습니다. 레위기 19장 9-10절의 규례, 즉 밭모퉁이와 떨어진 이삭을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 남겨두라는 그 오래된 법이 이방 여인 룻을 먹였습니다. 보아스는 그녀를 알아보고 말합니다. "네가 남편을 잃은 후에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 온 것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룻기 2:11).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 자리에서의 신실함이, 결국 누군가의 눈에 닿아 있었던 것입니다.

 

전환점, 타작마당의 밤

이야기는 타작마당에서 방향을 바꿉니다. 나오미의 인도로 룻은 보아스의 발치에 눕고, 보아스는 그녀를 내치지 않고 오히려 "네가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한 것이 네 시작보다 나중이 더 아름답다"(룻기 3:10)고 말합니다. 이 밤을 지나며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단순한 생존기에서 기업 무를 자의 이야기로, 그리고 훗날 다윗의 계보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옮겨갑니다. 하나님은 요란한 표적이 아니라, 밭두렁과 타작마당 같은 일상의 자리에서 자신의 뜻을 조용히 엮어가셨습니다.

 

오늘의 우리에게

우리는 종종 인생의 어느 굽이에서 나오미처럼 이름을 바꾸고 싶은 날들을 지나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쓰라린 시절을 함께 통과해 준 것은 대단한 기적이 아니라, 곁을 떠나지 않은 누군가의 손이었을 때가 많습니다. 룻이 그러했듯, 우리 곁에도 옷자락을 붙들고 함께 걸어준 이가 있었을 것이고, 혹은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신실함은 대개 무대 위가 아니라 밭모퉁이에서, 아무도 세어보지 않는 이삭 한 줌에서 드러납니다.

 

오늘 곱씹어 볼 물음

  • 나는 지금 인생의 어느 계절을 지나며 스스로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까.
  •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여겼던 자리에서의 나의 신실함을, 하나님은 어떻게 지켜보고 계실까요.
  • 지금 내 곁에서 옷자락을 붙들고 함께 걷고 있는, 혹은 내가 붙들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삭 한 줌도 놓치지 않으시는 손이, 결국 우리의 걸음을 가장 먼 길로 인도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