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

선으로 바꾸신 손

터키옥13 2026. 7. 9.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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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에서 시작된 이야기

열일곱 살 소년이 마른 웅덩이 바닥에 앉아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채색옷을 입고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그였는데, 지금은 형들의 손에 옷이 벗겨진 채 그저 팔려 가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요셉. 형들은 그를 은 이십 개에 상인들에게 넘기며, 아버지에게는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기로 입을 맞췄습니다(창세기 37:28).

그날 이후 요셉의 삶은 그의 뜻과 무관하게 흘러갔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고, 은혜를 입혔던 사람에게 잊혀진 채 몇 해를 더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그의 젊은 날은 온통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억울함을 삼킨 세월

성경은 요셉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느꼈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된 뒤 낳은 두 아들의 이름에서, 그의 속마음이 살짝 비칩니다. 첫아들의 이름은 므낫세,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이었습니다(창세기 41:51). 잊고 싶었던 것입니다. 잊어야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정작 잊고 싶었던 그 사람들이 그의 앞에 나타납니다. 기근을 피해 곡식을 구하러 애굽까지 내려온 형들이었습니다. 형들은 눈앞의 총리가 자신들이 팔아넘긴 동생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그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어릴 적 요셉이 꾸었던 꿈 그대로였습니다(창세기 42:6).

"당신들이 나를 팔았던 그 요셉입니다"

요셉은 한동안 자신을 밝히지 않은 채 형들을 시험합니다. 그러다 결국 더 참지 못하고 사람들을 물린 뒤 목놓아 웁니다. 그 울음소리가 바깥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합니다(창세기 45:2). 그리고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창세기 45:3)

형들은 놀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죄가 그대로 눈앞에 서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셉의 다음 말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납니다. 원망도, 추궁도 아니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세기 45:5)

그리고 훗날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난 뒤, 두려움에 떠는 형들에게 그는 다시 한번 못을 박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세기 50:20)

오늘의 우리에게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웅덩이 같은 시절이 있습니다. 억울하게 밀려난 자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노력,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 그 시절 한가운데 있을 때는 그것이 무엇으로 이어질지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요셉도 감옥 안에서는 자신이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들 앞에 설 날이 오리라는 걸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 이야기가 건네는 위로는, 그 모든 시간을 견디면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잃어버린 세월을 무의미로 남겨 두지 않으시는 손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손을 확인한 뒤에도 요셉이 원망 대신 용서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되는 것은, 지나간 상처를 붙들고 사는 것과 그것을 흘려보내는 것 사이에 얼마나 큰 힘의 차이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 곱씹어 볼 물음

  • 나의 삶에도 "웅덩이"라 부를 만한 시절이 있었나요?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은 무엇으로 이어져 있나요?
  • 나를 아프게 했던 누군가를 마주했을 때, 나는 원망과 용서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웠나요?
  •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요셉의 고백을, 내 삶의 어느 대목에 조심스레 대입해 볼 수 있을까요?

웅덩이에 던져진 소년과 형들 앞에서 운 총리는, 같은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