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뒤엎으신 예수님 — 거룩한 분노의 의미

명절이 다가오면 예루살렘 성전 뜰은 늘 붐볐다. 유월절을 지키러 먼 길을 온 순례자들은 로마 화폐를 성전 화폐로 바꿔야 했고, 제사에 쓸 짐승도 그 자리에서 구해야 했다. 처음에는 순례자를 돕기 위한 편의였을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편의가 이문을 남기는 장사로 변해갔다. 이방인들이 유일하게 기도할 수 있었던 '이방인의 뜰'은 흥정 소리로 가득한 시장이 되어 있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서서 상을 뒤엎으셨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요 2:16). 평소 온유하셨던 그분의 이 단호한 행동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 행동이 말해주는 것
이 사건은 단순히 화를 내신 장면이 아니다. 예수님이 바로잡으신 건 상 몇 개가 아니라, 기도해야 할 자리가 어느새 거래의 자리로 바뀌어버린 현실이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에 값이 매겨지고, 정작 중요한 것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예수님의 단호함은 순간의 격정이 아니라, 무엇이 진짜 소중한지를 지키려는 분명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우리 안의 '성전 뜰'
돌아보면 우리 삶에도 본래의 자리를 잃어버린 시간들이 있다. 가족과 마주 앉은 저녁 식탁이 어느새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바뀌어 있기도 하고, 조용히 기도하려 앉은 자리가 걱정 목록을 되짚는 시간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여러 가지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다만 가끔은,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단호함은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그 일이 있은 뒤에도 예수님은 같은 자리에서 병자를 고치고 사람들을 가르치셨다(마 21:14). 바로잡음 뒤에는 언제나 다시 채워지는 시간이 따라왔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 내 삶에서 본래의 목적을 잃은 채 습관처럼 흘러가는 시간이나 자리는 없는가?
- 나는 무언가를 바로잡고 싶을 때, 그것이 정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함인지 조용히 돌아본 적이 있는가?
- 무언가를 내려놓은 그 자리에, 나는 지금 무엇으로 다시 채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