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뿌리 — 히브리서 12장 15절
"너희는 두루 살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히브리서 12:15)

오래된 화단을 정리하다 보면 이상한 뿌리를 만날 때가 있다. 겉으로는 아무 풀도 없어 보이는데, 흙을 조금만 파보면 굵고 질긴 뿌리 하나가 땅속 깊이 얽혀 있다. 몇 년 전에 뽑았다고 생각한 잡초였다. 눈에 안 보인다고 없어진 게 아니었다. 뿌리는 그 자리에서 계속 살아 있었고, 다른 뿌리들과 얽히며 화단 전체의 양분을 조금씩 빨아들이고 있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공동체를 향해 이런 뿌리를 두고 경고한다.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라."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이 뿌리가 혼자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더럽게 된다고 했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묻힌 쓴 뿌리가,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뻗어간다.
뽑았다고 생각한 것이 뽑힌 게 아니다
용서했다고 말한 일이 있다. 시간이 지났으니 괜찮아졌다고 스스로도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의 이름 하나, 비슷한 상황 하나에 마음이 순식간에 뒤틀리는 걸 느낀다. "아직도 이러나" 싶어 당황스럽다. 뽑았다고 생각한 뿌리가 실은 땅속에서 계속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쓴 뿌리의 무서움은 여기에 있다. 겉으로는 잊은 척, 넘어간 척 살 수 있다는 것. 표정도 관리하고 말투도 다듬을 수 있다. 그러나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자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순간,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 그 잎을 내민다.
왜 하필 '뿌리'인가
성경이 굳이 '뿌리'라는 표현을 쓴 데는 이유가 있다. 뿌리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자란다. 줄기나 잎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스스로도 그 존재를 잊기 쉽다. 그러나 뿌리는 나무 전체를 지탱하고 양분을 끌어올리는 곳이다. 마음의 뿌리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 훨씬 아래, 오래된 서운함과 억울함이 자리 잡고 있으면 그 위에서 자라나는 모든 관계와 판단이 조금씩 그 영향을 받는다.
나이가 들수록 쌓인 세월만큼 뿌리도 깊어진다. 형제간의 오래된 서운함, 배우자에게 말하지 못한 섭섭함, 한때 가까웠던 이와의 틀어진 관계—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하게 얽히는 경우가 많다.
은혜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
본문은 쓴 뿌리를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것과 나란히 둔다. 이 연결이 의미심장하다. 쓴 뿌리는 단지 인간관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은혜를 받아들이는 능력 자체를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마음에 쓴 것이 가득한 사람은, 정작 자신에게 베풀어지는 선함과 은혜조차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의심하고, 재고, 곱씹느라 정작 선물로 주어진 것을 놓치고 만다.
오늘의 적용
땅속 깊이 박힌 뿌리는 손으로 잡아 뜯는다고 뽑히지 않는다. 흙을 파고, 뿌리의 끝까지 따라 들어가야 한다. 마음의 쓴 뿌리도 마찬가지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로 덮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이름 하나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마음 한구석이 뻣뻣해지는 그 이름. 그 뻣뻣함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조용히 따라 내려가 보는 것이다. 뽑아내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뿌리가 거기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뻣뻣해지는 이름이나 기억이 있나요?
- "용서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뿌리째 뽑히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나요?
- 그 뿌리가 나뿐 아니라 주변의 누군가에게까지 뻗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조용히 돌아본다면 무엇이 보이나요?
뽑았다고 믿은 뿌리도, 땅속에서는 여전히 자라고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