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

어리석은 부자이야기

터키옥13 2026. 7. 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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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곳간

추수철이었다. 한 부자의 밭이 그 어느 해보다 잘 되었다. 곳간은 이미 가득 찼는데 곡식은 계속 실려 들어왔다. 넘쳐서 둘 곳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고민 앞에 그는 서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할까, 내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누가복음 12:17).

예수님은 이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 부르셨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는 도둑질하지도, 남을 속이지도 않았다. 그저 열심히 일했고, 땅이 넉넉히 응답했을 뿐이다. 우리 대부분이 바라 마지않는 바로 그 자리에 그가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어리석다 하셨을까.

 

가장 좋은 고민

먼저 분명히 해두자. 이 부자는 악인이 아니었다. 그의 해결책도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낡은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을 지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쟁여두겠다는 것(12:18). 세상의 셈법으로 보면 나무랄 데 없이 지혜로운 판단이다.

우리는 이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 이것은 꿈이니까. 다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쌓아두는 것. 특히 이 나이에 이르면 계획은 대개 이렇게 흐른다. 곳간부터 든든히 채워두고, 그다음에 쉬자. 그러니 이 부자의 어리석음은 게으름이나 악함에 있지 않았다. 훨씬 조용하고, 그래서 훨씬 나와 닮은 어딘가에 있었다.

 

내 것, 내 것, 내 것

그의 혼잣말을 가만히 들어보자. 내 곡식, 내 곳간, 내 물건, 내 영혼(12:17-19). 문장마다 '내'로 돌아온다. 짧은 독백 안에 '나'와 '내 것'이 빼곡하다.

그런데 그 긴 계획 속에 끝내 등장하지 않는 것이 둘 있다. 하나님과, 이웃이다. 이 풍년을 주신 분에 대한 생각도, 곳간 하나 없는 옆 사람에 대한 생각도 그 안에는 없다. 넉넉함이 그를 더 크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작고 더 닫힌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위험한 것은 재물 자체가 아니다. 재물이 어느새 세상을 딱 내 곳간 크기만큼으로 줄여버릴 수 있다는 것 — 거기에 함정이 있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는 자기 영혼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2:19). 마치 자기 영혼의 주인이 자기인 양, 앞으로 여러 해를 쉬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12:20). 여러 해가 아니라 오늘 밤이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도로 찾으리니'였다 — 돌려받겠다는 것. 그 영혼은 애초에 그의 것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히 내 것이라 여겼던 것, 내 목숨과 내 영혼 — 그것이야말로 그가 한 번도 소유한 적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쌓아둔 모든 것은, 결국 다른 누군가가 쓰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예수님의 결론은 이렇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12:21).

여기서 예수님이 하지 않으신 말을 눈여겨보자. 그분은 저축이 잘못이라 하지 않으셨다. 쉬는 것이, 수고의 열매를 누리는 것이 잘못이라 하지도 않으셨다. 선은 다른 곳에 그어져 있었다. 자기만을 위해 쌓는 것과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 사이에.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다'는 것은, 죽음이 도로 찾아가지 못하는 부요함이다. 베푼 친절, 살아낸 감사, 나눈 것들, 남을 위해 쓴 사랑 — 영혼이 불려갈 때에도 텅 비지 않는 단 하나의 곳간이다.

 

오늘, 우리에게

지금이야말로 '더 큰 곳간'을 짓는 나이다. 평생 수고했으니, 이제 마땅히 누릴 안식을 계획하는 때. 그리고 이 비유의 어디에도, 쉬지 말라거나 누리지 말라는 말은 없다. 다만 이 이야기가 던지는 물음은 더 조용하고 더 날카롭다. 곳간을 지어 올리는 동안, 나는 하나님께 대하여도 부요해지고 있는가.

수확의 얼마쯤은, 오지 않을지도 모를 '언젠가'를 위해 다 쌓아두는 대신, 지금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면 어떨까. 내가 살아서 볼 수 있는 동안 베푸는 너그러움, 소리 내어 전하는 감사. 곳간을 걸어 잠그는 대신, 가진 것을 편 손 위에 얹어두는 가벼움. 그 가벼움이야말로, 이 나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깊은 안식일지 모른다.

 

오늘의 묵상

  • 나는 지금 어떤 '더 큰 곳간'을 짓고 있나요? 그 계획 안에 하나님과 이웃의 자리는 있나요?
  • 내가 가장 확실히 '내 것'이라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정말 내 것인가요, 잠시 맡겨진 것인가요?
  • 오지 않을지 모를 '언젠가'를 위해 쌓아두기만 한 것 중, 오늘 누군가에게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 쌓은 곳간은 언젠가 남의 것이 된다. 그러나 오늘 편 손 위에 얹어 나눈 것은, 영혼이 불려가는 밤에도 도로 빼앗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