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

한 해만 더

터키옥13 2026. 7. 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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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한켠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주인은 올해도 그 앞에 섰다. 벌써 세 번째 가을, 열매를 찾아 가지 사이를 뒤졌지만 이번에도 잎사귀뿐이었다. 그는 더 기다릴 마음이 없었다.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누가복음 13:7).

이 짧은 비유는, 밤늦게 자기 인생을 셈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듣는 이야기다. 나는 무엇을 맺었나. 이만큼 살았는데 남긴 것이 있나. 혹시 나는, 자리만 차지한 채 열매 없이 서 있던 저 나무는 아닐까.

삼 년을 기다린 주인

주인의 판단은 부당하지 않다. 삼 년이면 충분히 기다린 시간이다. 열매 없는 나무가 좋은 땅의 양분만 빨아들이고 있으니, 찍어내고 그 자리에 쓸모 있는 것을 심는 편이 합리적이다. 셈으로만 보면 그의 결론은 흠잡을 데가 없다.

우리는 이 목소리를 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숫자로 셈하는 목소리. "이만큼 시간이 흘렀는데, 결과가 뭐냐." 그리고 이 목소리는 대개,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나에게 들려주는 목소리다. 특히 이 나이에 이르면, 그 목소리는 밤마다 조금씩 커진다.

 

포도원지기가 나선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있다. 포도원지기다. 그가 나서서 말한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13:8). 한 해만 더. 나무가 그럴 자격을 갖춰서가 아니라 — 그러지 못했다 — 포도원지기가 아직 이 나무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자비는 가만히 봐주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그는 직접 흙에 손을 넣어, 뿌리 둘레를 파고, 굳은 땅을 헤집고, 양분을 부어주겠다고 한다. 여기서 은혜는 단지 '시간을 더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더 주고 손수 돌보는 것'이었다.

 

파헤쳐지는 뿌리

포도원지기의 다정함 안에는 사실 아프게 다가오는 진실이 하나 숨어 있다. "두루 파고" — 뿌리 둘레를 판다는 것은, 나무를 흔들어놓는 일이다. 오래 눌러앉아 단단히 굳어버린 땅을 다시 깨뜨리는 일이다. 뒤늦은 열매를 불러오는 돌봄이, 늘 부드럽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종종 뒤흔들림처럼, 편안하게 다져둔 흙이 파헤쳐지는 일처럼 다가온다.

돌아보면, 우리를 비로소 열매 맺게 한 계절은 우리를 먼저 파헤쳐놓은 계절이었던 경우가 많다. 그저 무너짐이라 여겼던 그 시간이, 실은 포도원지기가 뿌리 곁에서 일하던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비유는, 그 나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고 끝난다. 이듬해 열매가 열렸을까. 성경은 말해주지 않는다. 이야기는 심판의 자리가 아니라,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라는 유예의 자리에서 멈춘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이 바로 거기다. 최후의 결산이 내려진 해가 아니라, 한 해를 더 얻은 그 빌려온 해. 돌봄은 지금 일어나고 있고, 열매는 아직 가능하다

.

오늘, 우리에게

이 나이에 이르면 주인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남긴 게 뭐냐, 열매 없이 산 건 아니냐, 이제 너무 늦은 것 아니냐." 그러나 이 비유는 마지막 말을 주인이 아니라 포도원지기에게 맡긴다.

뒤늦은 열매도 열매다. 무화과나무는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물음은 "나는 열매 없이 살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이 한 해 — 거저 주어진, 돌봄이 함께하는 이 한 해 — 가 내 안에서 더디게 일하도록 나를 내어드릴 것인가"이다.

올해, 내 안의 어떤 굳은 땅이 파헤쳐질 필요가 있을까. 이 계절을 카운트다운이 아니라 돌봄으로 받아들인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리고 — 남들이 이미 찍어버리라 한 누군가를 향해, "한 해만 더" 하고 대신 빌어줄 포도원지기가 나 자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의 묵상

  • 내 안에서 "찍어버리라" 셈하는 주인의 목소리는 무엇을 두고 그렇게 말하나요?
  • 지난날, 무너짐인 줄만 알았던 그 시간이 실은 나를 돌보던 '두루 파는' 시간이었던 적은 없었나요?
  • 남들이 포기한 누군가를 향해, 내가 "한 해만 더" 하고 대신 빌어줄 자리는 어디일까요?

아직 찍히지 않았다는 것은, 누군가 나를 위해 "한 해만 더"를 빌어주었다는 뜻이다. 뒤늦게 맺힌 열매도, 열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