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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야기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는 계획"

by 터키옥13 2026.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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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강가,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고향을 잃고, 성전을 잃고, 자유를 잃은 사람들. 그들 중 누군가는 이렇게 물었을 겁니다. "이 낯선 땅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잊으신 겁니까?"

바로 그 절망의 한복판으로,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약속이 주어진 시점입니다. 상황이 좋아진 뒤가 아니라, 여전히 포로 생활 한복판,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그 순간에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70년이라는 시간

이 말씀 바로 앞 구절을 보면,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이라고 하셨습니다. 즉시 해방이 아니었습니다. 한 세대가 통째로 지나가야 하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다 보면 우리도 이런 '칠십 년'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은 시간, 자녀들이 떠난 빈 자리, 은퇴 이후 달라진 하루의 리듬. 즉시 풀리지 않는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이 기다림에 정말 뜻이 있는 걸까."

하나님의 대답은 '기다림이 없다'가 아니라, '그 기다림 속에도 계획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재앙이 아니라는 확신

원어로 보면 이 구절의 표현은 더 단호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두루뭉술하게 말씀하신 게 아니라, "재앙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으셨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예상치 못한 진단, 갑작스러운 이별,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들을 만납니다. 그럴 때 마음 한구석에서 슬며시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이것도 벌이 아닐까, 하나님이 나를 놓으신 게 아닐까.'

이 말씀은 그 생각에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지금 겪는 어려움이 하나님의 무관심이나 심판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 안에도 평안을 향한 계획이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와 소망, 늦지 않았다는 말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는 표현에서 눈여겨볼 것은, 이 약속의 대상이 젊은 세대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포로로 끌려간 이들 중에는 이미 인생의 많은 시간을 살아낸 어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여전히 '미래'라는 단어가 유효했습니다.

인생의 후반전에 접어들면 은근히 이런 마음이 듭니다. '이제 큰 변화는 없겠지, 남은 건 관리하는 일뿐이겠지.'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표에는 은퇴 나이가 없습니다. 예순에도, 일흔에도, 여전히 새로 심을 것이 있고, 여전히 향할 소망이 있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칠십 년' 같은 기다림은 무엇인가요? 그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2. 힘든 상황을 만날 때, 나도 모르게 그것을 '벌' 혹은 '버림받음'으로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3. 지금 내 나이와 자리에서, 하나님이 아직 나를 위해 준비하신 '미래와 희망'은 무엇일 수 있을까요?

지금이 끝이 아니라, 계획이 흐르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