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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야기

우물 가 의 여인

by 터키옥13 2026.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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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열두 시,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각이었다. 다른 여인들은 모두 이른 아침, 서늘한 공기 속에서 물동이를 이고 우물가로 나왔다가 이미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그런데 한 여인이 홀로, 아무도 없는 시간을 골라 수가 성 우물로 걸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녀에게는 다섯 번의 결혼과 한 번의 동거라는, 마을 사람 모두가 알고 수군거리는 사연이 있었다. 그림자도 없이 내리쬐는 햇볕 아래, 그녀는 오히려 안전했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을 시간이었으니까.  거기, 그 뜨거운 정오에 한 사람이 먼저 와 앉아 있었다.

 

목마름을 아는 사람

예수는 그녀에게 물을 청한다. "물을 좀 달라." 지치고 목마른 여행자의 평범한 부탁처럼 들리지만, 이것은 낯선 남자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로 이미 두 겹의 금기를 넘는 일이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남자와 여자 — 어느 쪽으로도 말을 섞지 않는 것이 그 시대의 상식이었다.

여인은 놀라서 되묻는다. 어떻게 당신이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십니까. 그 질문 속에는 오랜 세월 쌓인 자기 인식이 배어 있다. 나는 말을 걸어올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몸에 밴 방어였다.

목마름은 육체의 것만이 아니다. 오십을 넘기고 예순을 향해 가다 보면, 물리적인 갈증보다 더 오래되고 더 조용한 목마름을 알게 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해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젊을 때는 바빠서 몰랐던 그 갈증이, 삶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비로소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감추는 삶에 지친 사람에게

대화는 이상하게 깊어진다. 예수는 그녀의 삶으로 곧장 들어간다. 가서 남편을 불러오라. 여인은 얼버무린다. 남편이 없습니다. 예수는 그 얼버무림조차 정확히 짚어낸다.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사람도 남편이 아니라고. 이 순간이 이 이야기의 진짜 무게중심이다. 놀라운 것은 예수가 그녀의 과거를 들추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다 드러난 뒤에도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판단하지 않고, 설교하지 않고, 다만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 말해준다.

살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감추는 데 능숙해진다. 실패한 결혼, 끊어진 관계, 후회로 남은 선택들 — 이런 것들을 사람들 앞에서 정오의 태양 아래 드러내는 사람은 없다. 대신 아침 일찍이나 저녁 늦게, 아무도 없을 시간을 골라 조용히 자기 우물로 간다. 그런데 정작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감추는 기술의 완성이 아니라, 다 알려진 채로도 여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이다.

 

 

알아봐 주는 것이 시작이다

여인은 화제를 돌린다. 예배는 어디서 드려야 하는가, 그런 신학적인 질문으로. 사람은 누구나 아플 때 화제를 바꾸는 법을 안다. 그런데 예수는 그 질문에도 진지하게 답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녀에게 처음으로 밝힌다. 마을 사람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말을,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이 여인에게 가장 먼저 들려준 것이다.

그 순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간다. 물을 뜨러 나왔다가, 물동이도 잊은 채 돌아간다. 이제 그녀에게 물동이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말한 사람이 있다"고, 자신을 가장 부끄럽게 했던 바로 그 사실을 이제는 스스로 증거로 삼아 마을 사람들에게 외치러 간다.

 

인생 후반부, 물동이를 내려놓을 때

이 이야기가 오십, 예순의 우리에게 건네는 것은 단순하다. 누군가 나를 다 알고도 등 돌리지 않는 경험을 하고 나면, 평생 감추던 것을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

인생의 후반부는 종종 정리의 계절이라고 한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가늠하는 시기. 그런데 정작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은 오랜 세월 이고 다니던 부끄러움이라는 물동이일 때가 많다. 자녀들에게도, 오랜 친구에게도 끝내 말하지 못한 사연들. 그것을 계속 이고 사는 대신, 있는 그대로 알려지고도 괜찮았던 기억 하나를 붙잡고 사는 편이 훨씬 가볍다.

그리고 이 여인처럼, 가장 부끄러웠던 이야기가 나중에는 가장 진실한 증언이 되기도 한다. 완벽했던 이야기가 아니라 정직했던 이야기가,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


생각해볼 질문

  1. 나는 지금 누구를 피해, 어느 시간을 골라 나만의 '정오의 우물가'로 가고 있는가?
  2. 오랜 세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3. 있는 그대로 알려지고도 받아들여진 경험이 있다면, 그 기억은 지금 나에게 어떤 힘이 되고 있는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간 그녀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그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갈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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