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삿짐을 다 내보낸 빈방에 서 본 적이 있는가. 벽에는 액자가 걸려 있던 자리만 색이 바래지 않고 네모나게 남아 있고, 마룻바닥엔 가구가 놓였던 흔적이 옅게 패어 있다. 가득했던 방이 텅 비고 나면, 이상하게도 그 방의 크기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있을 땐 몰랐던 것들이 없어지고 나서야 보인다.
인생의 후반부도 비슷하다. 자녀가 집을 떠나고, 일터에서 물러나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낄 때, 우리는 문득 텅 빈 방에 선 사람처럼 서게 된다. 그리고 묻는다. 이만큼으로도 괜찮은가.
바울은 감옥에 갇힌 채로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썼다. 자유도, 건강도, 안정된 미래도 없는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립보서 4:11)
자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
이 구절에서 눈여겨볼 단어는 "배웠노니"다. 바울은 자신이 원래 만족을 잘하는 성격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배웠다"고 말한다. 헬라어로 이 단어는 훈련을 통해 익힌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자족은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몸에 익히는 훈련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만족하지 못하는 지금의 내가 부족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아직 배우는 중인 것뿐이다. 바울조차 풍부할 때와 궁핍할 때, 배부를 때와 배고플 때를 모두 거치며 이 자족을 익혔다고 고백한다(12절). 자족은 형편이 좋아져야 도달하는 결과가 아니라, 형편과 상관없이 걸어가는 길 위에서 배우는 태도다.
채워짐이 아니라 익숙해짐
젊을 때는 자족을 '충분히 가지면 생기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살아보면 안다. 더 가진다고 해서 자동으로 만족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하나씩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자리에서, 뜻밖에도 더 깊은 평안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족은 결핍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결핍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훈련이다. 바울이 감옥 안에서도 자족했던 것은 환경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그의 시선이 환경 너머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배우는 자족
퇴직 후 통장 잔고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질 때, 몸이 예전처럼 움직여지지 않아 서글퍼질 때, 자녀들이 각자의 삶을 사느라 연락이 뜸해질 때 —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자족을 배우는 교실이다. 형편이 완벽해지길 기다렸다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부족한 형편 속에서 배우는 것이다.
작은 실천이 도움이 된다. 하루를 마치며 오늘 있었던 일 중 감사할 만한 것 한 가지를 떠올려보는 것.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잠시 멈춰보는 것. 가진 것을 세어보기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시간에 마음을 두어보는 것. 이런 작은 훈련들이 쌓여 자족이라는 근육을 키운다.
함께 생각해보기
- 지금 내 삶에서 "이만큼이면 충분하다"고 느끼기 어려운 부분은 어디인가?
- 형편이 좋았을 때와 어려웠을 때를 돌아보면, 나의 마음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 오늘 하루, 부족함보다 있는 것에 마음을 두어본다면 무엇이 보일까?
자족은 도착지가 아니라 여정이다. 오늘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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