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육관 벽에, 수험생의 책상 앞에, 심지어 마라톤 대회 현수막에도 이 구절이 걸려 있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승리를 다짐하는 말, 목표를 이루겠다는 결의의 문구로 이만큼 자주 인용되는 성경 구절도 드물다.
그런데 정작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승리를 앞둔 사람이 아니었다. 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힌 사람이었다.
문맥을 놓치면 뜻도 놓친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절에서 이미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12절에서 비천에 처할 줄도,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고 덧붙인다. 13절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바로 이 흐름 안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모든 것"은 성공, 성취, 승리를 뜻하지 않는다. 배고픔을 견디는 것, 궁핍을 견디는 것, 갇힌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 — 바울이 말하는 "모든 것"은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모두 통과해내는 힘이다. 이 구절은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해주는 능력의 약속이 아니라, 무엇을 만나든 견뎌낼 수 있다는 견딤의 고백이다.
능력의 출처는 내가 아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힘의 주어는 바울이 아니라 그리스도다. 바울 자신의 의지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그를 버티게 한 것이 아니라, 그를 붙드는 존재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는 고백이다.
인생을 오래 살아본 사람은 안다. 의지만으로 버틸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을 때, 애써온 것들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혼자 힘으로는 도무지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날이 있다. 그런 날에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의지가 아니라, 나를 붙드는 손을 다시 붙잡는 일이다.
다시, 지금 이 자리에서
젊을 때는 이 구절을 목표 달성의 응원가로 읽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부에 서서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말로 들린다. 이제는 무언가를 더 이루기 위한 능력이 아니라, 줄어드는 것들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살아낼 힘을 구하게 된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아침에도, 마음이 자꾸 가라앉는 날에도, 이 구절은 "네가 잘해서"가 아니라 "너를 붙드는 이가 있어서" 버틸 수 있다고 말해준다.
이것이 바로 후반부 인생에 이 구절이 주는 위로다. 내 힘의 크기를 확인하는 구절이 아니라, 내 힘이 다한 자리에서 여전히 함께하시는 분을 확인하는 구절이다.
함께 생각해보기
- 이 구절을 지금까지 어떤 뜻으로 이해하고 있었는가?
- 요즘 내 힘으로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고 느끼는 일은 무엇인가?
- 오늘, 내 의지가 아니라 나를 붙드는 손을 의지해본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모든 것을 해낼 힘이 아니라, 모든 것을 견딜 힘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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