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게디의 광야, 다윗은 굴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사울은 삼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그를 쫓던 중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사울이, 볼일
을 보려고 홀로 그 굴 안으로 들어왔다(사무엘하상 24장).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이, 무방비한 몸으로, 자기 눈앞에 서 있었다.
곁에 있던 부하들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바로 오늘입니다. 원수가 당신 손에 넘어왔습니다. 마음껏 하십시오. 평생 도망치던 자에게, 마침내 되갚을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칼을 뽑지 않았다.
손 안에 들어온 원수
생각해보면 다윗에게는 넘칠 만큼의 명분이 있었다. 사울은 그에게 창을 던졌고, 그를 광야로 내몰았고, 짐승을 몰듯 그를 쫓아다녔다. 다윗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는 사울을 위해 골리앗과 싸웠고, 그의 곁에서 수금을 탔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돌아온 것은 살의였다.
그런 사울이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 등을 보이고 서 있다. 여기서 손을 쓰면 모든 고통이 끝난다. 아무도 다윗을 탓하지 못할 것이다. 정당방위라 불러도 좋을 자리였다.
우리 안에도 이런 굴이 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 마침내 약해지는 순간, 되갚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할 자리. 그 순간 무엇을 하느냐가, 실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나를 드러낸다.
옷자락을 자르던 손이 떨렸다
다윗은 살그머니 다가가 사울의 겉옷 자락만 몰래 베어냈다.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런데 성경은 이 대목에서, 그 작은 일에조차 "다윗의 마음이 찔렸다"고 적는다(사무엘상 24:5). 옷자락 한 조각을 벤 것만으로도 양심이 아렸던 것이다.
이 예민함이 다윗을 다윗이게 했다. 미워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 자리에서도, 그는 자기 마음이 굳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손을 들어 저 사람을 치는 일을 여호와께서 금하신다고(24:6). 갚는 일은 내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이라고. 그는 심판자의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원한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상대가 잘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이 아프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일이 나를 집어삼키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갚는 저울을 내 손에서 내려놓는 순간, 정작 자유로워지는 것은 나다.
내 아버지여
다윗은 굴에서 나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사울을 불렀다. 그리고 베어낸 옷자락을 들어 보였다. 마음만 먹었으면 당신을 죽일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를 죽이려는 그 사람을 향해 이렇게 불렀다. "내 아버지여"(24:11).
사울은 소리 내어 울며 고백했다.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너는 나를 선대하였으나 나는 너를 학대하였도다"(24:17).
그러나 눈여겨볼 것이 있다. 다윗은 그렇게 용서하고도, 산에서 내려가 사울의 품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는 여전히 거리를 두었고, 자기 사람들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물러났다. 너그러움은 어리석음이 아니다. 용서하는 것과, 나를 다시 해칠 자리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다른 일이다. 손을 거두면서도 지혜롭게 거리를 지킬 수 있다 — 이것이 다윗이 보여준 성숙한 너그러움이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나이에 이르면, 마음속에 오래된 장부 하나쯤은 누구나 지니고 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 끝내 사과하지 않은 사람, 여전히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사람. 그 장부를 손에 꼭 쥐고, 언젠가 받아낼 사과를 기다리며 남은 시간을 저당 잡히기 쉽다.
다윗은 다른 길을 보여준다. 내가 옳을 수 있고, 내가 억울할 수 있고, 심지어 그 사람이 내 손안에 들어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치지 않는 것. 그가 그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을지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
받지 못한 사과를 기다리는 일을 오늘 그만두어도 괜찮다. 그것은 그 사람을 봐주는 일이 아니라, 나를 그 장부에서 놓아주는 일이다. 그리고 용서한다고 해서, 나를 아프게 한 자리로 굳이 다시 걸어 들어갈 필요는 없다. 손을 거두되, 거리는 지혜롭게 지키면 된다.
오늘의 묵상
- 내 손에 쥔 채 좀처럼 내려놓지 못하는 '오래된 장부'가 있나요? 그 안에는 누가 적혀 있나요?
- 나는 받지 못한 사과를 기다리느라, 지금의 평안을 저당 잡히고 있지는 않나요?
- 손을 거두는 것과 거리를 지키는 것 — 지금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은 어느 쪽인가요?
치지 않은 손은 약한 손이 아니다. 갚을 수 있는데도 갚지 않기로 한 손, 그것이 가장 강한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