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붕 위에서
봄이었다. 왕들이 전쟁터로 나가는 계절,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사무엘하 11:1). 저녁 무렵, 그는 왕궁 지붕 위를 거닐었다. 평생 싸워 얻은 자리, 이제는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 그 높이에서 그는 한 여인을 보았고, 본 것을 그냥 가졌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던 시기에, 가장 어두운 일이 시작되었다. 우리 인생에도 그런 지붕이 있다. 이만하면 됐다 싶은 자리,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할 것 같은 높이 — 바로 거기서, 우리는 가장 크게 넘어지곤 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는 것
성경은 그날의 다윗을 세 개의 동사로 적는다. 보았고,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았고, 데려다가 가졌다(사무엘하 11:2-4). 그 사이에 망설임의 흔적이 없다. 권력은 죄를 매끄럽게 만든다. 마찰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는 왕이라는 이유로 남의 아내를 취했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힘을 가진 쪽은 다윗이었다. 부름을 받아 온 쪽은 밧세바였다. 이 이야기는 어느 유혹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의 것을 빼앗은 이야기다.
더 무서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일을 덮으려고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불러들였다. 그러나 우리아는 동료들이 들판에 있는데 자기만 집에서 편히 쉴 수 없다며 자기 집에도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윗은 바로 그 충성심을 이용해 그를 전쟁의 가장 위험한 자리로 보내 죽게 했다(사무엘하 11장). 하나의 죄가 그다음 죄를 끌고 온 것이다. 감추려는 마음이, 처음의 잘못보다 더 큰 값을 치르게 했다.
잠잠할 때에
그리고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 년 가까운 시간이 그냥 흘렀다. 아이가 태어났고, 다윗은 여전히 나라를 다스리고, 재판하고, 예배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멀쩡했다.
그러나 훗날 그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시편 32:3). 들키지 않았으나 자유롭지도 못한 시간. 아무도 모르게 무언가가 안에서 썩어가는 시간.
이 조용한 시간을, 이 나이의 우리는 안다. 오래전에 저지른 어떤 일, 깊이 묻어두고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은 어떤 일. 그 위로 삶은 계속 흘러가지만, 그 아래 어딘가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그 잠잠함을 깨뜨린 것은 나단이었다. 그는 다윗을 정면으로 몰아세우지 않았다. 대신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양 떼가 많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이 자식처럼 기르던 단 한 마리 암양을 빼앗아 잡았다는 이야기. 다윗의 정의감이 불처럼 타올랐다.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때 나단이 말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사무엘하 12:7). 거울이 돌아섰다. 다윗이 남에게 내린 판결이, 그대로 자기에게 떨어졌다.
이 장면에 숨은 자비를 놓치지 말자. 누군가가 다윗을 목숨 걸고 사랑했기에, 그에게 진실을 말해준 것이다. 나단은 자기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그 말로, 다윗을 다시 다윗 자신에게 돌려주었다. 살면서 나단 한 사람을 곁에 둔 이는 복이 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 나단이 되어주어야 한다.
정한 마음을 내게 창조하소서
다윗은 그 말을 전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변명하지도 않았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사무엘하 12:13). 즉시, 온전히, 조건 없이.
그리고 그가 드린 기도(시편 51편)는 단지 "봐 달라"는 기도가 아니었다. 그는 다시 지어지기를 구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 51:10). 여기 '창조하다'는 말은, 태초에 하나님이 무에서 세상을 지으실 때 쓰인 바로 그 단어다. 그는 가장 깊은 자리에서의 새 출발을 구한 것이다.
그럼에도 결과는 남았다. 아이는 세상을 떠났고, 칼은 그의 집에서 끝내 떠나지 않았다(사무엘하 12:10). 용서는 진짜였고, 상처의 잔해 또한 진짜였다. 다윗은 그 둘을 함께 짊어졌다. 회개는 지나간 시간을 되감아주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서부터 정직하게 살아갈 길을 열어준다.
오늘, 우리에게
이 나이에 이르면, 무엇을 주고서라도 되돌리고 싶은 일 하나쯤은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다. 나를 믿었던 누군가에게 했던 일, 오래되어 이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일.
앞에는 두 갈래의 쉬운 길이 있다. 묻어버리거나("그땐 젊었고, 이젠 다른 사람이 됐어"), 아니면 그 무게에 영영 짓눌리거나. 다윗은 세 번째 길을 보여준다. 온전히 이름 붙이되 변명하지 않고 슬퍼하는 것, 용서만이 아니라 진짜로 달라지기를 구하는 것, 그리고 자비와 결과를 함께 안고 앞으로 걸어가는 것.
당신의 뼈를 조용히 쇠하게 하는, 아직 입을 열지 못한 진실이 있나요. 애써 피하고 있는 나단이 있나요 — 혹은 누군가에게 그 나단이 되어줄 용기가 필요한가요. 아무리 작고 늦었더라도, 정직이 청하는 한 걸음이 있나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외면하지만 않으면 된다.
오늘의 묵상
- 겉으로는 멀쩡히 흘러가지만, 그 아래 아직 아물지 않은 일 — 나에게 그것은 무엇인가요?
- 나에게 진실을 말해준 나단이 있었나요? 혹은 내가 누군가의 나단이 되어야 할 자리가 있나요?
- 나는 그저 용서받기를 구하고 있나요, 아니면 정말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지어지기를 구하고 있나요?
가장 어두운 일도, 정직하게 이름 붙여진 순간부터 다르게 흐르기 시작한다.
정한 마음은 지난 일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새로 창조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