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36 입술의 파수꾼 저녁 밥상머리였다. 며느리가 아이 재우는 방식을 이야기하는데, 문득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해라." 삼십 년 넘게 아이를 키운 경험이 확신처럼 등을 떠밀었다. 다행히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국그릇을 한 번 더 젓는 것으로 대신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 하지 않은 말이 그날 저녁의 평화를 지켜준 것이었다.다윗은 이런 순간을 알았던 사람이다. 그는 기도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스스로 입을 다스릴 자신이 없어서, 대신 문지기를 세워달라고 청한 것이다.입은 늘 열려 있다집에는 대문이 있고, 대문에는 문지기나 자물쇠가 있다. 아무나 드나들지 못하게, 들일 것과 들이지 말 것을 가려주는 장치다. 그런데 .. 2026. 7. 17. 돌을 든 자들 새벽이었다. 성전 뜰에는 아직 밤의 서늘함이 가시지 않았고, 예수는 땅에 무언가를 쓰고 계셨다. 그때 한 무리가 여인을 끌고 왔다.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로, 사람들의 시선 한가운데 세워진 여인. 그리고 그 손에는 이미 돌이 쥐어져 있었다.율법을 아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돌은 정당했다. 규정에 맞았고, 절차에 어긋남이 없었다. 문제는 돌이 아니라, 그 돌을 들게 만든 마음이었다.예수는 몸을 굽혀 땅에 무언가를 쓰셨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말씀하셨다."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그 한마디에, 가장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씩 돌을 내려놓고 자리를 떴다. 늙은 자부터였다는 점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살아온 날이 길수록, 자기 안의 돌 던질 수 없는 이유를 더 많이 알고 있었던.. 2026. 7. 16. 우물 가 의 여인 낮 열두 시,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각이었다. 다른 여인들은 모두 이른 아침, 서늘한 공기 속에서 물동이를 이고 우물가로 나왔다가 이미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그런데 한 여인이 홀로, 아무도 없는 시간을 골라 수가 성 우물로 걸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녀에게는 다섯 번의 결혼과 한 번의 동거라는, 마을 사람 모두가 알고 수군거리는 사연이 있었다. 그림자도 없이 내리쬐는 햇볕 아래, 그녀는 오히려 안전했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을 시간이었으니까. 거기, 그 뜨거운 정오에 한 사람이 먼저 와 앉아 있었다. 목마름을 아는 사람예수는 그녀에게 물을 청한다. "물을 좀 달라." 지치고 목마른 여행자의 평범한 부탁처럼 들리지만, 이것은 낯선 남자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로 .. 2026. 7. 15. "작은 방, 큰 믿음" 살다 보면 누군가를 위해 아무 조건 없이 문을 열어주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환대가 훗날 얼마나 큰 은혜로 돌아올지,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오늘은 열왕기하 4장에 나오는 수넴 여인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수넴이라는 마을에 살던 한 부유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그 동네를 지날 때마다 그를 청하여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저 한두 번의 호의로 그칠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여인은 남편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내가 저 사람은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인 줄 아노니,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준비하사이다"(왕하 4:9-10). 대가를 바라지 않은 순수한 섬김이었습니다. 엘리사는 그 은혜를 갚고 싶어 .. 2026. 7. 15. 발치에 앉은 시간 베다니의 작은 집 마당에 저녁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습니다. 부엌에서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화덕의 열기가 뒤섞여 분주했고, 마르다는 손님상을 차리느라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집을 정돈하고 음식을 준비한 사람도 마르다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 곁에는, 부엌일을 거들어야 할 동생 마리아가 조용히 발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분주한 손과 멈춰 선 마음마르다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그 시대에 마땅히 귀하게 여겨지던 섬김이었고, 마르다는 그 일에 성실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마르다가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하였다"고 전합니다(누가복음 10:40).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마음은 자꾸만 딴 곳으로 흩어졌던 것입니.. 2026. 7. 14. 나흘째 되던 날 베다니 마을 어귀에 곡소리가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은 지 벌써 나흘, 무덤은 굴 입구에 큰 돌로 막혀 있고 그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조문객들 사이에서 눈이 붓도록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의지했던 자매인데, 정작 오라버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예수님은 곧바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나흘이 지나서야 도착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늦으셨을까마르다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한복음 11:21). 원망이라기보다는,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서운함이었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이런 순간을 만납니다. 분명히 기도했는데, 분명히 신실하게 살았는데, 정작 필요한 순간에 하늘은 .. 2026. 7. 14.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