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36

빈 들에서 줍는 이삭-(룻과 나오미 이야기) 모압 들판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은 멀고 황량했습니다. 나오미는 남편을 잃고, 두 아들마저 차례로 땅에 묻은 뒤였습니다. 함께 걷던 두 며느리에게 그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각자 친정으로 돌아가라." 오르바는 눈물로 입을 맞추고 돌아섰지만, 룻은 시어머니의 옷자락을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룻기 1:16). 그 말은 다짐이라기보다 텅 빈 자리에서 나온 결단이었습니다. 남은 자의 자리나오미는 베들레헴에 돌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룻기 1:20). 이름의 뜻이 '기쁨'에서 '쓰라림'으로 바뀌던 .. 2026. 7. 12.
가장 짧은 눈물 베다니 마을의 공기는 무거웠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기별을 받고도 예수님은 이틀을 더 머무셨고, 그 사이 나사로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라비를 무덤에 눕히고 나흘째를 맞고 있었습니다. 이미 몸에서는 냄새가 난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릴 만큼,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조문객들의 곡소리가 골목을 채우던 그 마을에, 예수님이 마침내 도착하셨습니다.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마르다가 먼저 뛰어나가 예수님을 맞았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원망과 믿음이 뒤섞인 이 한마디에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았을 질문이 들어 있습니다. 왜 하필 그때 안 계셨습니까. 왜 조금 더 일찍 오지 않으셨습니까.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자리.. 2026. 7. 11.
돌을 옮겨라 베다니 마을 어귀에는 벌써 나흘째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가 세상을 떠난 지 나흘, 무덤 앞에는 조문객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고, 공기 중에는 옅은 부패의 냄새가 스며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렸습니다. "그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셨다더니, 왜 이렇게 늦게 오셨을까."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틀을 더 머무르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하셨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이미 돌로 막힌 무덤이었습니다. 마르다의 원망, 마리아의 눈물마르다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말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한복음 11장 21절). 원망이라기보다는, 차마 삼키지 못한 슬픔에 가까운 말이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도 .. 2026. 7. 10.
선으로 바꾸신 손 웅덩이에서 시작된 이야기열일곱 살 소년이 마른 웅덩이 바닥에 앉아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채색옷을 입고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그였는데, 지금은 형들의 손에 옷이 벗겨진 채 그저 팔려 가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요셉. 형들은 그를 은 이십 개에 상인들에게 넘기며, 아버지에게는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기로 입을 맞췄습니다(창세기 37:28).그날 이후 요셉의 삶은 그의 뜻과 무관하게 흘러갔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고, 은혜를 입혔던 사람에게 잊혀진 채 몇 해를 더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그의 젊은 날은 온통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억울함을 삼킨 세월성경은 요셉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느꼈는지 자세히 .. 2026. 7. 9.
흙으로 돌아가는 길 동산 동쪽, 사람이 걸어 나온다. 등 뒤로 화염검을 든 그룹들이 지키고 서 있고, 그의 손에는 아직 흙 묻은 삽 한 자루뿐이다. 어제까지 그는 이름을 짓는 사람이었다. 짐승들이 그의 앞을 지나가면 그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불렀고, 세상은 그의 목소리로 정돈되었다. 오늘 그는 땅을 파는 사람이 되었다. 같은 사람인데, 완전히 다른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흙으로 지어진 사람창세기는 아담을 이렇게 소개한다.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히브리어로 '아담'이라는 이름 자체가 '흙'이라는 단어에서 왔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는 처음부터 흙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고귀하게 지어졌지만, 동시에 흙으로 지어졌다.우리는 살면서 종종 이 두 가지 사실 중 하나를 잊고 산.. 2026. 7. 8.
한 해만 더 포도원 한켠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주인은 올해도 그 앞에 섰다. 벌써 세 번째 가을, 열매를 찾아 가지 사이를 뒤졌지만 이번에도 잎사귀뿐이었다. 그는 더 기다릴 마음이 없었다.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누가복음 13:7).이 짧은 비유는, 밤늦게 자기 인생을 셈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듣는 이야기다. 나는 무엇을 맺었나. 이만큼 살았는데 남긴 것이 있나. 혹시 나는, 자리만 차지한 채 열매 없이 서 있던 저 나무는 아닐까.삼 년을 기다린 주인주인의 판단은 부당하지 않다. 삼 년이면 충분히 기다린 시간이다. 열매 없는 나무가 좋은 땅의 양분만 빨아들이고 있으니, 찍어내고 그 자리에 쓸모 있는 것을 심는 편이 합리적이다. 셈으로만 보면 그의 결론은 흠잡을 데가 없다.우.. 2026. 7. 7.